제11막 제32화::Re:Re:포트레이트
[반리]
……. (무대 중앙, 0번……. 처음 섰을 때보다 지금이 더 이 장소의 무거움이나 가치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 됐어)
(초대 MANKAI 컴퍼니가 여기서 쌓아 올린 시간…… 그리고 신생 봄조와 여름조가, 우리 가을조와 겨울조가 쌓아 올린 시간도 전부 여기에 쌓여있어)
(이 극장을, 극단이 쌓아 올린 것을 헛되게 만드는 일만큼은 절대로 할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기에 서 있고 싶어. 이 장소의 무거움을 이해한 지금이니까 더욱, 마음속 깊이 그걸 바라고 있어)
……후우.
(무대는 혼자 서면 꽤 넓구나)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야. 객석 뒤에는 MANKAI 컴퍼니 멤버가 있어. 그리고 기자재를 사이에 두고 가을조 멤버와 감독쨩이…… 이보다 더 든든한 건 없지)
(객석에는 없지만, 카메라 저편에는 수많은 관객이 있어)
……어디 해보자고.
(지금은 어떻게 보일지고 뭐고 생각할 수 없어. 그저 지금 여기 있는 내 전부를, 내면까지 다 드러낼 뿐이야)
[치카게]
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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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주는 여러분께]
――MANKAI 컴퍼니의 셋츠 반리입니다.
먼저, 많은 팬을 불안하게 만든 점에 대해 사과할게. 모처럼 다음 공연을 발표했는데 이런 소동이 일어나게 돼서 정말로 미안해.
하지만 이건 결코 사죄를 위한 방송이 아니라는 것도 말해두고 싶어.
SNS에서 퍼진 소문은 허실이 섞여 있어.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쳤고, 그 점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어. 사과도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게 내 모든 건 아니고, 나라는 인간이 오해받아 극단 이미지가 나빠지는 건 피하고 싶어.
오늘은 '셋츠 반리'라는 인간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서 방송을 하게 됐어. 부디,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 앞으로에 대해 들어주길 바라.
나는 배우니까, 회견 형식으로 얘기하는 것보다는 무대 위에서 전하고 싶어.
……. '마이 포트레이트―― 셋츠 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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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츠 반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뭐든지 남들보다 잘했고 주변에서도 칭찬받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에게 조금 더 칭찬받고 싶다던가, 그 정도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당연해지자, 서서히 주변 반응이 시들해져 갔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모든 일에 감정이 점점 희박해져서, 무엇을 하든 다 시시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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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장해가던 중에, 고등학생 때는 싸움에도 손을 댔던 시기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진심으로 꼴사납지만, 아마도 어렴풋하게 무서움을 느꼈던 거다.
내가 무엇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텅 빈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자극이 있는 걸 찾아 비슷하게 난폭한 녀석들과 싸움만 해댔다.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일시적인 자극만을 추구했다.
지금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앞뒤 생각 없는 행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거다.
아니,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자포자기했던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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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우연히 연극과 만났다.
연극은 보람이 있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처음으로 생각대로 안 되는 일 뿐이었다.
내가 연기에서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한번은 연극과 마주하지 않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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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지금 함께 연기하는 동료들의 일인극을 봤고, 절대로 이대로 끝낼 수 없다, 진 채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고 싶다'든가,
'당당하게 무대 중앙에 설 수 있게 되고 싶다'든가,
'친구와 나, 두 사람 몫의 꿈을 이루고 싶다'든가,
'외면해왔던 꿈에서 도망치지 않고 한 번 더 마주 보고 싶다'든가…….
동료 한 명 한 명의 진지한 마음을 알게 되고 나도 그런 식으로 살고 싶어졌다.
그때까지는,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놈들이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연기의 원점은 필시 동료들의 포트레이트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바뀌었고, 대학도 진지하게 연기와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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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나는 타인의 연기를 보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눈앞의 무대 위에서, 동료들이 꼴사나울 정도로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예전이었다면 그 녀석들의 필사적인 모습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배우들이 그저 도망치려는 나보다 몇백 배는 더 멋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마도 나는 연기와 마주 봐도 잘되지 않아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볼품없어지는 게 싫었던 거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유작작한 모습으로 있고 싶어서, 타인에게 결점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런 식으로 내 약점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내 약점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료들 덕분에 그대로 마주 보지 않고 도망치는 쪽이 몇백 배는 더 꼴사납다고 알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리 꼴사나워지더라도 이제 두 번 다시 무대 위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온 힘을 다해 정면으로 맞설 거다.
텅 비어 있던 내 안에 동료들의 연기가 뿌리내린 것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한 연기가 하고 싶다.
그게 내 안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삶이고, 내가 배우로서 무대 위에 서고 싶은 절대적인 이유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하고 싶다.
연극과 마주 보는 나는 앞으로 몇 번이고 엉망이 되어 죽을힘을 다하고, 막다른 곳에 다다르고, 꼴사나워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볼품없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줘도 좋은 동료들과 만났다.
그런 동료들이 있는 이 극단의, 이 극장의 무대 위이기에, 여기에 서고 싶다.
다른 걸로는 대신할 수 없어. 연극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 따위 아무래도 좋아.
지금 여기에 서있는 내가 마음속 깊이 갈망하는 게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오늘처럼 잔뜩 괴로워하고 꼴사납게 발버둥 치고 그럼에도 본방 무대에서는 있는 힘껏 허세를 부리며, 가장 멋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품고 연기하고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이곳에 서 있고 싶어.
이제는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어.
어렵게 찾은 내 안의 답을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나는 연기가 하고 싶어. 이곳에서, 계속,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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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주는 여러분께]
그러니까――.
……. 하하, 역시 꼴사납네…….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마음을 꼭 움켜쥔 것 같아. 감정도, 전부 어딘가 남의 일처럼 느껴왔는데…… 이게 나구나.
이게 지금 제 전부임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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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반리 군, 잘했어.
[타스쿠]
열심히 했구나.
[유키]
이렇게 솔직한 네오 양아치는 처음 아냐?
[텐마]
반리 씨의 모든 게 나왔어.
[쿠몬]
반리, 분하지만 멋있어!
[무쿠]
분명 모두에게 전해졌을 거야!
[미스미]
반리, 힘냈어!
[호마레]
마음이 떨리는 포트레이트였네!
[아즈마]
반리만이 할 수 있는 포트레이트야.
[츠무기]
반리 군, 답을 찾은 걸까.
[이타루]
우와, 동접자 쩌네.
[지배인]
라이브 종료했어요!
[타이치]
반 쨩!!
[반리]
우왓.
[오미]
잘했어.
[사쿄]
수고했다, 리더.
[반리]
머리 토닥이지 마!
[아자미]
마지막에 울어서 다행이야. 메이크업 안 무너지고 끝났어.
[쥬자]
꼴사납긴.
[반리]
시끄러!
[쥬자]
……하지만 멋있었다.
[반리]
그러니까 시끄럽다고.
[이즈미]
(반리 군에게 동료가 생겨서 다행이야. 서로 인정하는 가을조 모두와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