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막 제18화::만약의 미래와 확실한 지금/츠무기
[츠무기]
그럼, 여기 신청서에 기입 부탁드립니다. 다 하시면 저쪽 창구에――.
[노인]
그래그래, 고마워.
[츠무기]
……후우.
[동료A]
맛있는 커피를 받았는데 츠키오카 씨도 마실래?
[츠무기]
잘 먹겠습니다.
[동료B]
아, 이제 시작하지 않아?
[아나운서]
"그럼 올해 플뢰르상 노미네이트 극단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츠무기]
아, 이 극단 재밌죠. 요즘에 연출이 바뀌어서――.
[동료A]
그러고 보니 츠키오카 씨도 예전에 연극을 했다고 했지?
[동료B]
어? 그래?
[츠무기]
아…… 학생 연극으로 잠깐 한 정도예요.
[동료A]
지금은 안 해?
[츠무기]
네?
[동료A]
실은 지인이 새로 극단을 꾸리려고 멤버를 모으고 있다고 해서. 이번에 오디션을 연다고 하는데, 어때? 관심 있으면 소개해줄게.
[동료B]
취미 정도면 공무원을 하면서도 할 수 있지 않아?
[동료C]
츠키오카 씨가 배우를 할 거면 응원할게. 한 번 더 해보는 게 어때?
[츠무기]
한 번 더…….
[아나운서]
"다음은 플뢰르상 유력후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미네이트 단골 극단, GOD 극단입니다."
"GOD 극단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확립된 독특한 세계관과 총합 퀄리티가 높은 점, 프로페셔널한 솜씨이지요."
"열정적인 팬도 많은 GOD 극단을 이끌어가는 건 역시 그의 존재가 크겠죠."
[타스쿠]
"내 이름은 에드워드!"
[츠무기]
――.
[동료A]
타카토 타스쿠, 아우라가 굉장하지.
[동료B]
그야말로 GOD 극단이라는 느낌이야. 멋있어~
[동료C]
역시 올해는 GOD 극단일까?
[츠무기]
……. (타스쿠는 굉장해. 나는 못 하는 연기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어. 예전에는 무대 위에 서는 것도, 타스쿠 옆에서 연기하는 것도 당연했는데……)
(한 번 더, 그 장소에 서고 싶어. 하지만 그날 모든 걸 포기해버린 내게 그럴 자격은 없어――)
[동료A]
그래서 츠키오카 씨, 조금 전에 한 얘기 말인데. 어때?
[츠무기]
……죄송해요. 저, 연극은 이미 관뒀어요.
-
[학생 어머니]
네~
[츠무기]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신세 지게 됐습니다. 가정교사인 츠키오카입니다.
[학생 어머니]
잘 부탁해요. 츠키오카 씨는 평판이 좋아서 수업 잡기 정말 힘들었는데, 만나서 반가워요.
[츠무기]
감사합니다. 요즘에 시간이 조금 생겨서 다행이에요.
[학생 어미니]
자, 유우키. 인사해야지.
[유우키]
…….
[학생 어머니]
죄송해요, 선생님.
[츠무기]
아뇨. 처음 만나는 건데 당연하죠.
유우키 군, 잘 부탁해. 오늘은 첫날이니까 앞으로 할 수업 설명과 스케줄을 세우면 그 후엔 자기소개 시간을 가질까?
-
[츠무기]
이상이 앞으로 할 수업 스케줄과 설명입니다.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학생 어머니]
아뇨, 괜찮아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츠무기]
네.
그럼 지금부터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돼.
[유우키]
네에…….
[츠무기]
나는 츠키오카 츠무기야. 가정교사 경력은 대학생 때부터 했으니까, 6년 정도인가? 대학은 심리학을 전공했어.
뭐 궁금한 거 있니?
[유우키]
그럼…… 여자친구 있어?
[츠무기]
어? 여자친구라…… 없어. 지금은 짝사랑 중이야.
[유우키]
어? 왠지 의외야.
[츠무기]
그래?
[유우키]
상대는 어떤 사람이야? 오래 좋아했어?
[츠무기]
상대는 사람이랄까, 연극이야.
[유우키]
뭐야 그게.
[츠무기]
짝사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좋아하고 또 좋아해서, 매일 애태우고 있어.
[유우키]
계속 연극을 해왔어?
[츠무기]
으~음, 계속은…… 아니고. 한번 포기했었는데, 다시 돌아왔어.
[유우키]
……잠깐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
[츠무기]
뭐 마실래? 커피 괜찮아?
[유우키]
……카페오레가 좋아.
[츠무기]
알았어.
[유우키]
커피 못 마시는 거 애 같다고 생각했지.
[츠무기]
뭐? 그런 생각 안 했어. 카페오레도 맛있잖아.
앉을까?
[유우키]
응.
[츠무기]
왜 집이 아니라 공원이야?
[유우키]
엄마가 듣는 거 싫어서.
난 어릴 때부터 춤을 배웠는데, 갑자기 키가 컸을 때 춤을 잘 못 추게 된 시기가 있어……. 콩쿠르에서 상도 못 타고, 주변 애들하고 실력 차도 신경 쓰여서 도중에 내팽개쳤어.
그걸로 부모님하고 엄청 싸우고 댄스 스쿨도 바로 탈퇴하고…… 지금은 아무것도 의욕이 안나.
그런데 엄마가 앞으로는 공부하라고 가정교사를 불러서…….
[츠무기]
……혹시, 춤 다시 추고 싶어?
[유우키]
……응. 어차피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재능이 없어. 평생 춤 같은 거 안 추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티비에서 아이돌이 춤추는 걸 보거나 거리에서 춤 연습하는 걸 보면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서. 춤추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하지만 한번 내팽개쳤으니까 돌아가기도 좀 그렇고, 공백기가 있어서 이제 전처럼 추지 못할지도 몰라. 그게 무서워서…….
[츠무기]
어떤 마음인지 나도 알아.
[유우키]
있잖아, 선생님은 어떻게 한 번 더 돌아갈 생각이 들었어? 돌아가고 후회하진 않았어?
[츠무기]
…….
-
너는 계속 너인 채로 있어 줘. 내가 곁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는 네 연기를 해. 나뿐만 아니야, 그 녀석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
……. 다들, 오늘 무대에서 멋대로 행동해서 미안해. 더 좋은 연기를, 좋은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마음만이 앞서서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한 번 더 내 연기를 검토해보고 싶어.
츠무기 씨…….
나는 츠무기 군의 연기를 좋아해. 그대는 그걸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좋아.
맞아. 츠무기가 츠무기의 연기를 부정하는 건 이번 무대 전부를 부정하는 짓이야.
……자신감을 가져.
자신감이라…… 그래. 나는 틀렸어. 이 무대는 내 연기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데……. 더 좋은 연기를 하자. 우리의 연기를,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
저는 당신이 하는 GOD 극단의 표현을 순수하게 존경하고 있어요.
이번에 새로운 표현을 손에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당신의 말을 듣고 배우의 길을 한번 포기했었지만…… 그걸 계기로 이 극단과도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 만남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런가…….
-
[츠무기]
물론 돌아갈 때 자신감도 전혀 없었고, 불안했고, 무서워서 참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런 감정보다는 어쨌든 한 번 더 연극이 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어.
막 돌아갔을 때는 괴롭기도 했는데, 다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기쁨과 행복에 비할 게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건, 함께 무대에 선 동료들과 감독님 덕분이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지 않을까? 좋아하니까 한다. 그거면 돼. 중요한 건 좋아하는 마음과 한걸음 내디딜 용기야.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아무래도 행동하기 어려워지니까. 춤출 때는 뭔가 생각해?
[유우키]
――아니.
……선생님, 잠깐 봐줘.
――.
[츠무기]
굉장하다.
[유우키]
과장은. 전혀 못 했는데.
……그거, 한 입 줘.
[츠무기]
커피?
[유우키]
전에 마셨을 때는 한입 먹고 포기했어.
[츠무기]
여기.
[유우키]
……역시 써.
[츠무기]
후후.
[유우키]
나, 한 번 더 춤에 도전할래. 못하더라도, 그래도 역시 춤이 좋아. 좀 더 춤추고 싶고 잘하고 싶어.
[츠무기]
그래. 얘기하다 보니 나도 연기가 하고 싶어졌어. 그렇지, 지금 비로드웨이에서 길거리 공연 안 할래?
[유우키]
뭐?
[츠무기]
유우키 군은 댄서 역할을 하고 지금처럼 그냥 춤을 추면 돼.
[유우키]
갑자기 남들 앞에서…….
[츠무기]
안될까? 재밌을 것 같은데.
[유우키]
연극 바보냐고.
[츠무기]
후후, 자주 들어.
[유우키]
좀 더 잘하게 되면.
[츠무기]
기대하고 있을게.
-
[자비]
멍!
[츠무기]
앗, 다녀왔어, 자비.
[츠무기 할머니]
어서 오렴. 이게 와있었어.
[츠무기]
그림엽서? 아, 사쿠야 군이 보낸 거구나.
[사쿠야]
"혼자 여행하는 건 조금 쓸쓸하지만, 새로운 만남이 있어서 재밌어요."
[츠무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 순조로워 보여서 다행이야)
[사쿠야]
"최근에 들른 역에서 산지 직송 꽃을 많이 팔고 있어서 예뻤어요. 거기서 무거운 짐을 든 아주머니를 도와줬는데, 답례로 꽃 구근을 받았어요."
"꽃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석산하고 비슷한 모양의 핑크색 예쁜 꽃이라고 해요!"
"다음에 안마당에서 츠무기 씨와 함께 키우고 싶어요."
[츠무기]
석산하고 비슷한 모양의 핑크색 꽃이라면, 혹시…….
[츠무기 할머니]
네리네 아닐까?
[츠무기]
그런 것 같아요.
네리네의 꽃말은……. 후후, 다시 만나는 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