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막 제20화::만약의 미래와 확실한 지금/아자미
[아자미]
칫, 안 그치네…… 재수도 없지.
(이제 슬슬 진짜 갈 곳이 없어)
시후토 [지금 어딨어?]
[아자미]
(시후토한테도 켄 씨한테도 더는 신세 질 수 없어. 결국 내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메이크업도 그래. 이런 꿈, 야쿠자 집안에 태어난 나 같은 게 품고 있어봤자 어디에도 미래가 없어. 이런 거에 매달리는 나 자신도……)
-
[아자미]
…….
[시후토]
아자미. 야, 무슨 생각해?
[아자미]
어? 아니…….
[시후토]
요즘에 자주 넋 놓고 있네.
[아자미]
아~ 숙제가 좀 있어서.
[시후토]
숙제 내줬어?
[아자미]
극단 쪽. 기숙사 나와 있는 동안에 만약 MANKAI 컴퍼니에 안 들어갔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는 게 숙제야. 그걸 생각하고 나서 MANKAI 극장에 서는 내 나름의 이유를 찾아야 해.
[시후토]
호오~ 재밌어 보인다.
[아자미]
극단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난 한계가 올 때까지 계속 가출해있었겠지.
[시후토]
아자미 고집 세잖아.
[아자미]
시끄러워.
[시후토]
그래도 그때 아자미가 가출해서 다행이야.
[아자미]
무슨 뜻이야?
[시후토]
아자미는 어쩌다 보니 MANKAI 기숙사에 얹혀살고 그러다가 극단에 입단하게 된 거잖아? 그때는 아자미가 메이크업 꿈도 이루고 나보다 빨리 연극을 시작한 게 분하고 짜증 났는데…….
하지만 분하고 초조한 마음 덕분에 죽어라 연습해서 GOD 극단 오디션을 보고 합격할 수 있었어. 지금 레니 씨 밑에서 하루토 씨랑 마도카랑 연극을 하는 건 아자미가 가출한 덕분일지도 몰라.
모든 게 조금씩 이어져 있는 거지. ……이게 인연이라는 건가?
[아자미]
(인연이라……)
-
[아자미]
…….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샀던 메이크업 도구는 전부 버려졌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걸로 돌아오다니)
(아버지가 화장품을 전부 버려서 크게 싸우고, 그걸 계기로 가출해서 극단 기숙사에 굴러 들어가고…… 다시 생각해보면 내 일이지만 웃기네)
(하지만 MANKAI 컴퍼니는 굴러 들어간 나를 그대로 받아줬어)
-
이놈도 저놈도 적당히 하기는. 무대에는 무대 용 메이크업이 있다고.
오오……!?
굉장하다, 얼굴이 전혀 달라졌어!
또렷해졌어. 무대에서 잘 보이겠어!
……그럭저럭하네.
아자밍 뭐 하는 사람이야!?
……그냥 헤어 메이크업 지망생.
-
도련님, 네가 화장에 집착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회장님께 말해.
어차피 제대로 듣지도 않을 거잖아.
야 아자미, 네 '이야기'는 그렇게 시시한 거야? 첫 무대 때의 배짱은 어쨌어.
……시시한 이야기밖에 하지 못한다면, 넌 지금 가을조에 없었겠지.
회장님, 연극 좋아하니까 괜찮아여.
힘만으로 당해낼 수 없는 녀석한테는, 어떡할 거지?
――.
너는 이미 극단에 들어오기 전과는 달라. 배워서 익힌 게 있잖아.
아자미 군, 한 번 더 보여줘. 아자미 군의――.
……거기 아버지. 눈깔 크게 뜨고 잘 보라고. 오디션 때는 사쿄가 보는 게 싫어서 부모에 관한 건 테마로 고를 수 없었어.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 이게 내 '포트레이트'야――.
-
[아자미]
(여름조 '첫사랑 코시엔'때 갑자기 다짜고짜 모두의 메이크업을 고치게 돼서 솔직히 좀 불안하기도 했어. 그 녀석들 메이크업이 엉망인 건 알아도, 무대 메이크업은 처음이었고)
(하지만 실제로 타인에게 메이크업하는 건 신났고, 마법의 브러쉬로 쿠몬의 안색을 좋게 만들었을 때는 기뻤어. 메이크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엄마를 떠올리고 가슴이 뜨거워졌어)
(메이크업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바꾸고 내가 도움이 되었을 때, 이게 내가 관철하고 싶은 꿈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어)
(메이크업 담당으로 극단에 인정받은 것도 기뻤어. 15살 때 내가 품고 있던 마음대로 안 되는 감정도 감독님과 가을조 멤버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려고 했어)
(……전 세계에, 이런 마음을 가진 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다양한 걸 안고 있는 인간이 이 극단에는 많이 있어서, 서로의 약점을 지탱해주면서 무대 위에 서 있어)
(내가 들어간 가을조에 사쿄를 포함한 전원이 가출 경험이 있던 것도 기묘한 인연과 유대를 느꼈어)
(내가 이렇게 타인과 강한 인연을 느끼게 된 건 MANKAI 컴퍼니에 들어갔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전 세계에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극단 모두와, 감독님과 가을조 멤버와의 인연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아. 미경험자인 나를 메이크업 담당으로 인정해주고 경험을 쌓게 해준 극단의 은혜도 아직 다 갚지 못했어)
(이게 내가 그 사람들과 MANKAI 극장 무대 위에 서는 이유……)
[이치로]
――도련님.
[아자미]
?
[이치로]
이런 게 왔어.
[아자미]
그림엽서……? 사쿠야 씨인가.
[이치로]
후루이치한테도 왔으니까 나중에 전해줘.
[아자미]
알았어.
(같은 봄조 녀석들이면 몰라도 나나 사쿄한테까지 보내다니 사쿠야 씨는 역시 성실하다니까)
[사쿠야]
"아자미 군, 잘 지내? 나 여행 와서도 잊지 않고 보습에 신경 쓰고 있어!"
"전에 알려준 순서를 지키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아자미 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아자미]
우수하네.
[사쿠야]
"이 여행을 통해서 나는 내 근원에 대해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아자미]
(근원이라……)
-
[아자미]
내 이름에도 뭔가 유래가 있을까?
[사쿄]
물어본 적 없어? 난 알고 있는데. 다음에 아버지한테 물어봐.
-
[아자미]
…….
-
[아자미]
아버지.
[회장]
응?
[아자미]
잠깐 괜찮아?
[회장]
용돈 더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아자미]
아니야.
[회장]
뭐냐.
[아자미]
……내 이름의 유래같은 거, 뭐 있어?
[회장]
갑자기 왜?
[아자미]
전에 사쿄가 안다고 해서 궁금해졌어.
[회장]
거기 앉아라.
내 이름 키쿠오, 엄마는 사유리. 둘 다 꽃 이름이 들어가니까 너한테도 꽃 이름을 넣어주고 싶다고 사유리가 그랬어.
남자앤데 꽃 이름이냐고 생각했는데, 사유리가 완고하게 물러나지를 않았어.
어떤 꽃말이 좋냐고 묻길래 내 뒤를 잇기에 어울리는 어엿한 남자로 지랄만 한 게 좋다고 했지. 부모인 내게조차 대들 정도로 기개 있는 남자로 자라는 이름으로 해달라고 말이야.
사유리가, 그렇다면 좋은 꽃을 알고 있다고 하더군…….
[아자미]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구나……)
……뒤는 안 이을 거지만.
[회장]
훗, 상관없어. 너는 역정날 정도로 우리가 바란대로 컸으니까.
[아자미]
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