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막 눈을 뜨는 달

제 5막 제 4화::꿈 일기

(•̀ᴗ•́) 2018. 2. 20. 00:41

12월 17일.

오늘도 춥다.


가게 주인아저씨한테서 도망칠 때 넘어져서 신발을 잃어버렸다.

나중에 돌아와서 찾아봤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발의 감각이 없어진다.

손발이 얼면 썩으니까 잘라내야 한다고 들었다.


발을 자르는 건 싫다. 어디선가 녹이고 싶어.

오늘은 잠자기에 괜찮은 곳을 전부 어른이 점령하고 있다.

발만이 아니라, 손도, 얼굴도 몸도 차가워진다.


"추워……."

"괜찮아?"


말을 걸어준 건 모르는 녀석이었다.

겹겹이 껴입은 게 따뜻해 보인다.


이쪽 인간이 아니야. 제대로 된 집이 있는 인간이다.


"……."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죽을 거야."

"……갈 곳, 없어."

"내가 너를 '조직'에 소개할게. 우리와, 함께 살아가겠어?"

"그런 녀석은 내버려 둬. 쓸모도 없을 거야. 거치적거릴 뿐이라고."


다른 한 명은 인상이 좋지 않다. 나는 순간적으로 목을 옆으로 저었다.


"……안 가."

"거봐. 냅두자고."

"하지만……."

"안 간다니까 할 수 없잖아."

"마음이 내키면 말을 걸어줘. 자주 역 앞에 있을 거야."

"……."

"저 녀석은 어차피 이대로 죽을 거야."

"……."


나도 죽을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죽을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혼자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 녀석은 계속 거절해도 나에게 권유해왔다.


-


"스스로 말하긴 좀 그런데, 나는 머리가 좋아. 조직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주고, 장래가 유망하다고들 해."

"……."

"너는 생명력과 신체 능력이 좋아. 분명 우리가 한 팀이 되면 최강의 팀이 될 거야."

"……."

"봐, 몇 번을 와도 소용없다고. 돌아가자."

"또 올게―― 아, 맞아. 이 진저브레드, 괜찮으면 줄게."

"진저브레드……?"


그 진저브레드라는 과자를 한 입 먹은 순간.

생각보다 먼저, 입이 열렸다.


"……갈게."

"어?"

"……같이 갈게."

"갑자기 왜?"

"……진저브레드."

"아하하! 더 먹고 싶어? 뭐야, 처음부터 과자로 낚으면 됐을걸."

"이 녀석 분명 도움이 안 될 거라고."

"고마워. 오늘부터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

"그 과자 말이야,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먹는 거야."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게 나와, 그 녀석과 그 녀석의 만남이었다.


-


[이즈미]

그럼, 오늘 연습은――.


[유조]

실례한다.


[이즈미]

어라? 유조 씨, 무슨 일이세요?


[유조]

신입이 들어왔다며? 한가하니까 보러 왔어.


[시트론]

오― 유조, 결국 일선에서 밀려났구나?


[유조]

누가.


[이즈미]

아직 공연 연습에 안 들어갔는데…….


[유조]

그래, 기초연습이라도 시켜봐.


[이즈미]

알겠어요.

그럼 다들, 우선 빨리 말하기랑 발음 연습부터 시작하자.

치카게 씨는 처음이니까, 이 종이를 보면서 해주세요.


[치카게]

이걸 읽으면 돼?

간장 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다. 경찰청 철창살은 외 철창살이고 검찰청 철창살은 쌍 철창살이다.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은 못 그린 기린 그림이고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이다. 저기 계신 저분이 박 법학박사이시고 여기 계신 이분이 백 법학박사이시다.


[유조]

……호오.


[이즈미]

(발음도 발성도 초심자라고는 믿을 수 없어…….)


-


[이즈미]

다음은, 간단한 에튀드를 할거예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해주세요.


[유조]

…….


[이즈미]

(치카게 씨, 오디션 때도 생각한 건데, 연기에 실수가 없어. 몸놀림도 가볍고…….)


[유조]

꽤 재주 좋은 녀석이군.


[사쿠야]

치카게 씨, 처음인데 굉장해요!


[치카게]

연극은 처음이지만, 가부키는 가볍게 손대본 적이 있어.


[사쿠야]

네에!? 정말요!? 그렇구나, 그래서…….


[츠즈루]

가부키가 가볍게 손대볼 만한 거예요……?


[치카게]

아하하. 글쎄 어떨까?


[이즈미]

(진짠지 거짓말인진 모르겠지만, 좀 믿어버릴 것 같아. 배짱도 두둑하고, 연기를 이상하게 꾸미거나 하지 않아.)


-


[이즈미]

그럼, 오늘은 이만할게요.


[유조]

다음 공연은 정해졌나?


[츠즈루]

아뇨, 아직. 슬슬 각본 주제를 정해야 하는데…….


[이즈미]

문제는 치카게 씨에게 어떤 역할을 주느냐 하는 거지.


[유조]

아예 이 녀석을 주연으로 하면 어때?


[치카게]

저 말이에요?


[시트론]

갑자기 주연이라니, 엄청난 청탁이야!


[마스미]

엄청난 발탁.


[이즈미]

하지만, 연극 미경험이에요.


[츠즈루]

처음부터 주연이라니 부담감이 생기는 게…….


[이타루]

창단공연 때하고는 다르게, 지금은 어느 정도 극단 팬도 생겼고.


[유조]

저 잠재력을 보면 주연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경험이 없는 만큼, 주연을 하는 게 경험도 쌓을 수 있고 감도 붙을 거야.

관객이 받아들여 줄지 아닐지는 저 녀석 하기 나름이겠지만, 중심에 세워두는 게 관객도 기억하기 쉬워.


[츠즈루]

그건, 그렇죠…….


[이타루]

뭐, 선배니까, 의외로 가볍게 해낼 가능성도 있나.


[사쿠야]

확실히, 치카게 씨라면 금방 늘 것 같아요!


[시트론]

챌린지 중요해!


[마스미]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즈미]

치카게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치카게]

자신은 없지만, 문제없어.


[이즈미]

네? 그래요?


[치카게]

뭐든지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니까.


[이즈미]

(꽤나 담백하게…….)

치카게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유조]

결정됐군.


[이즈미]

적어도, 본인한테 맞춰서 이야기를 쓰는 게 연기하기 쉬울 것 같아.


[츠즈루]

그렇네요. 그렇게 할게요.


[사쿠야]

치카게 씨가 주연인 무대, 또 새로운 봄조의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돼요!


[시트론]

연령층이 높아질 거야!


[마스미]

아저씨.


[치카게]

너무하네.


[유조]

……이봐.


[이즈미]

네?


[유조]

……치카게는 주변 사람들과 평온하게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는 것 같아.


[이즈미]

――.


[유조]

단합이 잘 되어 있는 봄조의 불안요소가 될 수도 있어. 계기를 만들어서, 일찌감치 단결시키는 게 좋을 거야.


[이즈미]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