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막 제 4화::꿈 일기
12월 17일.
오늘도 춥다.
가게 주인아저씨한테서 도망칠 때 넘어져서 신발을 잃어버렸다.
나중에 돌아와서 찾아봤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발의 감각이 없어진다.
손발이 얼면 썩으니까 잘라내야 한다고 들었다.
발을 자르는 건 싫다. 어디선가 녹이고 싶어.
오늘은 잠자기에 괜찮은 곳을 전부 어른이 점령하고 있다.
발만이 아니라, 손도, 얼굴도 몸도 차가워진다.
"추워……."
"괜찮아?"
말을 걸어준 건 모르는 녀석이었다.
겹겹이 껴입은 게 따뜻해 보인다.
이쪽 인간이 아니야. 제대로 된 집이 있는 인간이다.
"……."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죽을 거야."
"……갈 곳, 없어."
"내가 너를 '조직'에 소개할게. 우리와, 함께 살아가겠어?"
"그런 녀석은 내버려 둬. 쓸모도 없을 거야. 거치적거릴 뿐이라고."
다른 한 명은 인상이 좋지 않다. 나는 순간적으로 목을 옆으로 저었다.
"……안 가."
"거봐. 냅두자고."
"하지만……."
"안 간다니까 할 수 없잖아."
"마음이 내키면 말을 걸어줘. 자주 역 앞에 있을 거야."
"……."
"저 녀석은 어차피 이대로 죽을 거야."
"……."
나도 죽을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죽을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혼자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 녀석은 계속 거절해도 나에게 권유해왔다.
-
"스스로 말하긴 좀 그런데, 나는 머리가 좋아. 조직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주고, 장래가 유망하다고들 해."
"……."
"너는 생명력과 신체 능력이 좋아. 분명 우리가 한 팀이 되면 최강의 팀이 될 거야."
"……."
"봐, 몇 번을 와도 소용없다고. 돌아가자."
"또 올게―― 아, 맞아. 이 진저브레드, 괜찮으면 줄게."
"진저브레드……?"
그 진저브레드라는 과자를 한 입 먹은 순간.
생각보다 먼저, 입이 열렸다.
"……갈게."
"어?"
"……같이 갈게."
"갑자기 왜?"
"……진저브레드."
"아하하! 더 먹고 싶어? 뭐야, 처음부터 과자로 낚으면 됐을걸."
"이 녀석 분명 도움이 안 될 거라고."
"고마워. 오늘부터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
"그 과자 말이야,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먹는 거야."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게 나와, 그 녀석과 그 녀석의 만남이었다.
-
[이즈미]
그럼, 오늘 연습은――.
[유조]
실례한다.
[이즈미]
어라? 유조 씨, 무슨 일이세요?
[유조]
신입이 들어왔다며? 한가하니까 보러 왔어.
[시트론]
오― 유조, 결국 일선에서 밀려났구나?
[유조]
누가.
[이즈미]
아직 공연 연습에 안 들어갔는데…….
[유조]
그래, 기초연습이라도 시켜봐.
[이즈미]
알겠어요.
그럼 다들, 우선 빨리 말하기랑 발음 연습부터 시작하자.
치카게 씨는 처음이니까, 이 종이를 보면서 해주세요.
[치카게]
이걸 읽으면 돼?
간장 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다. 경찰청 철창살은 외 철창살이고 검찰청 철창살은 쌍 철창살이다.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은 못 그린 기린 그림이고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이다. 저기 계신 저분이 박 법학박사이시고 여기 계신 이분이 백 법학박사이시다.
[유조]
……호오.
[이즈미]
(발음도 발성도 초심자라고는 믿을 수 없어…….)
-
[이즈미]
다음은, 간단한 에튀드를 할거예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해주세요.
[유조]
…….
[이즈미]
(치카게 씨, 오디션 때도 생각한 건데, 연기에 실수가 없어. 몸놀림도 가볍고…….)
[유조]
꽤 재주 좋은 녀석이군.
[사쿠야]
치카게 씨, 처음인데 굉장해요!
[치카게]
연극은 처음이지만, 가부키는 가볍게 손대본 적이 있어.
[사쿠야]
네에!? 정말요!? 그렇구나, 그래서…….
[츠즈루]
가부키가 가볍게 손대볼 만한 거예요……?
[치카게]
아하하. 글쎄 어떨까?
[이즈미]
(진짠지 거짓말인진 모르겠지만, 좀 믿어버릴 것 같아. 배짱도 두둑하고, 연기를 이상하게 꾸미거나 하지 않아.)
-
[이즈미]
그럼, 오늘은 이만할게요.
[유조]
다음 공연은 정해졌나?
[츠즈루]
아뇨, 아직. 슬슬 각본 주제를 정해야 하는데…….
[이즈미]
문제는 치카게 씨에게 어떤 역할을 주느냐 하는 거지.
[유조]
아예 이 녀석을 주연으로 하면 어때?
[치카게]
저 말이에요?
[시트론]
갑자기 주연이라니, 엄청난 청탁이야!
[마스미]
엄청난 발탁.
[이즈미]
하지만, 연극 미경험이에요.
[츠즈루]
처음부터 주연이라니 부담감이 생기는 게…….
[이타루]
창단공연 때하고는 다르게, 지금은 어느 정도 극단 팬도 생겼고.
[유조]
저 잠재력을 보면 주연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경험이 없는 만큼, 주연을 하는 게 경험도 쌓을 수 있고 감도 붙을 거야.
관객이 받아들여 줄지 아닐지는 저 녀석 하기 나름이겠지만, 중심에 세워두는 게 관객도 기억하기 쉬워.
[츠즈루]
그건, 그렇죠…….
[이타루]
뭐, 선배니까, 의외로 가볍게 해낼 가능성도 있나.
[사쿠야]
확실히, 치카게 씨라면 금방 늘 것 같아요!
[시트론]
챌린지 중요해!
[마스미]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즈미]
치카게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치카게]
자신은 없지만, 문제없어.
[이즈미]
네? 그래요?
[치카게]
뭐든지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니까.
[이즈미]
(꽤나 담백하게…….)
치카게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유조]
결정됐군.
[이즈미]
적어도, 본인한테 맞춰서 이야기를 쓰는 게 연기하기 쉬울 것 같아.
[츠즈루]
그렇네요. 그렇게 할게요.
[사쿠야]
치카게 씨가 주연인 무대, 또 새로운 봄조의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돼요!
[시트론]
연령층이 높아질 거야!
[마스미]
아저씨.
[치카게]
너무하네.
[유조]
……이봐.
[이즈미]
네?
[유조]
……치카게는 주변 사람들과 평온하게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는 것 같아.
[이즈미]
――.
[유조]
단합이 잘 되어 있는 봄조의 불안요소가 될 수도 있어. 계기를 만들어서, 일찌감치 단결시키는 게 좋을 거야.
[이즈미]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