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죽다.

검에 죽다. 제6화

(•̀ᴗ•́) 2018. 9. 22. 00:47

"타카토, 거기 방해돼."

"죄송합니다."


GOD 극단에 입단하고 수개월――.

큰 연습실 벽을 따라 많은 극단원이 늘어서고 연습이 진행되어 간다.


쓸데없는 말은 금지다.

과제는 희극일 터인데 연습실에는 시종 긴장감이 짙게 깔려 날카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역할을 얻는 것에 필사적으로, 주변은 모두 밀어내야 하는 라이벌이다.

그곳에 친밀한 동료의식 같은 건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뻥 뚫린 옆 공간을 바라본다.

함께 오디션을 받은, 여기에 있어야 할 츠무기의 모습이 없다.

씁쓸한 후회와 초조함, 공허함이 북받쳐 무의식중에 주먹을 꽉 쥐었다.


"다음, 타카토."

"――네!"


나는 억지로 얼굴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


레니 씨가 극장으로 불러냈던 건 입단하고 1년쯤 됐을 때였다.

객석을 등지고 선 레니 씨가 시키는 대로 혼자 무대 위를 걷기 시작하자, 별안간 멈추라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그곳이 네가 있을 곳이다."

"네?"


내가 서 있던 곳은 정확히 무대 센터였다.

여기에 설 수 있는 건 GOD 극단의 주연을 맡는 톱 뿐이다.


설마, 내가――?

기쁨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타스쿠의 연기는 당당하고 매력이 있어. GOD 극단의 센터에 어울리지."

"……감사합니다."


-


만원사례의 최종일.

객석에서 밀려오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칭찬의 소리를 중앙에서 온몸으로 받아낸다.

나란히 서 있던 라이벌을 밀어내고 손에 쥔 정점의 자리.

톱의 책임, 자긍심, 그것들이 어디까지고 높아지게 한다.


커다란 무대 정 중앙에서 보이는 경치는 최고다.

하지만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경치는 일변한다.


나를 톱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그 자리에 오르려는 라이벌들의 시선.

혼자서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은 고독감.

그 중압감에 지지 않도록 그저 노력하는 나날 속에서 공허함을 익혔다.


-


[시노자키]

――그런 일도 있었지.


[타스쿠]

――.


[시노자키]

타카토?


[타스쿠]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시노자키]

타카토는 첫 주연 때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당당한 게 정말 건방졌다고 말했어.


[타스쿠]

긴장했었어요.


[시노자키]

그게 어디가. 다들 그랬어. 지금까지 톱에 선 녀석들 중 가장 대담하다고.


[타스쿠]

티를 안 냈을 뿐이에요.

(……눈치를 챘던 건, 그 앙케트를 써준 사람 뿐이었지)


[시노자키]

……그래서, 아직 마음이 안 정해진 거야?


[타스쿠]

…….


[시노자키]

은혜를 갚지 못했다라.


[타스쿠]

아뇨…….

(감독님은 충분히 갚았다고 했어. 지금 극단에 있는 이유가 은혜를 갚기 위한 것뿐이었다면 망설일 필요 없었겠지)

(시노자키 씨네 극단에 들어가면 분명 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새로운 연극을 만날 수 있어. 하지만……)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하게 해주세요.

(아직 결론을 낼 수가 없어)


[시노자키]

괜찮아. 천천히 생각해. 우리는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어.


[타스쿠]

감사합니다.

(내가 MANKAI 컴퍼니에 있는 이유라……)


-


[가이]

…….


[이즈미]

앗, 가이 씨, 마침 잘됐다.


[가이]

무슨 일이지?


[이즈미]

지금 창고에서 짐을 꺼내고 싶어서요, 도와주시겠어요?


[가이]

알았다.


-


[이즈미]

저 위에 있는 선반인데요, 손이 안 닿아서――.


[가이]

이거면 되나?


[이즈미]

감사합니다.


[가이]

이 상자도 정리해 둘까?


[이즈미]

아, 그건―― 저번에 온 타스쿠 씨 짐이에요. 참고용으로 제공받은 대본이요.


[가이]

대본만 해도 꽤 많은 양이군.


[이즈미]

그렇죠. 다양하게 있어서 재미있어요.


[가이]

……이건?


[이즈미]

동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네요. 꽤 유명한 각본이라서 많은 극단에서 무대화했었어요.


[가이]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보러 간 아버지의 무대.

커튼콜에 나온 아버지는 무대 끝쪽에서 몇 번이고 머리를 숙였다.

빈 좌석이 눈에 띄는 객석에 울려 퍼지는 뜸한 박수 속에서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던 기억이 있다.


연극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빈말로라도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무대 위에 나왔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의 배우 생활은 안정감이 없었을 거다.

연습보다 부업인 알바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길거리 공연 다녀올 테니까 가이는 집 보고 있어." 하는 말을 남기고 나가는 아버지는, 무엇보다 즐거워 보여서――.



[가이]

……잠시 나갔다 오지.


[이즈미]

네?


[가이]

연습시간 전에는 돌아오겠다.


[이즈미]

어디 가게요?


[가이]

무사수행이다.


[이즈미]

……네?


[가이]

…….


[이즈미]

앗, 잠깐 기다려주세요――.


-


[가이]

"죽어라――! 핫!"


[이즈미]

무사수행이란 게, 길거리 공연을 말하는 거였구나…….

(갑자기 나가서 무슨 일인가 했네……)


[가이]

"어젯밤, 주인이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다. 너 외에는 생각할 수 없어."


[이즈미]

……. (가이 씨, 막 입단했을 때와 비교하면 연기가 늘었어. 저번 연습하고 비교해도 늘었고. 자율연습 열심히 하고 있구나……)


[가이]

……감사합니다.


[이즈미]

수고했어요, 가이 씨!

(물론 아직 서투른 부분은 있지만, 혼자서 하는 길거리 공연인데 손님도 몇 사람 남아있고 충분해!)


[레니]

……이런 이런. 어디선가 소음이 흘러들어온다 싶었더니…….


[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