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더 의견이 있으신 분?
그럼 이걸로 오늘의 플뢰르상 이사회를 마칩니다.

[레니]
……맥빠질 정도로 간단하게 통과됐군.

[유키오]
레니가 정리해준 덕분이야. 역시 레니가 맡아서 진행하면 순탄하다니까.

[레니]
네 계획이 구멍투성이인 거뿐이야.

[유키오]
앞으로 더 바빠질 거야.

[레니]
주로 내가 말이지.

[유키오]
하하, 잘 부탁해.
그럼 오늘 이사회도 생각보다 빨리 끝났으니까, 우리 야망이 한걸음 전진한 기념으로 마시러 가자.

[레니]
오늘은 피곤해.

[유키오]
어~? 난 내일은 미국으로 가야 해, 항상 마시던 바에서 유조랑 카스미네도 부르자.

[레니]
……하아. 어쩔 수 없군. 빨리 끝내고 나올 거야.

-

[유키오]
다들 조금 늦게라도 올 수 있대.

[레니]
그래.

[유키오]
모처럼 다들 모이는 거니까 오늘은 '완숙 컴퍼니'얘기도 하고 싶어.

[레니]
극단 이름 그걸로 하지 말라니까.

[유키오]
그럼 '숙성 컴퍼니'나 '풍작 컴퍼니'는?

[레니]
대단하군. 나는 죽어도 생각 못 할 것들이야.

[유키오]
헤헤, 그 정도까진 아닌데.

[레니]
칭찬한 거 아니야.

[유키오]
지금의 너희와 어떤 연출에 도전해볼지, 어떤 역할을 맡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뛰어.

[레니]
'꿈의 흔적'에서도 한 번 했잖아.

[유키오]
그건 내가 아니라 꽃피우는 할아버지 연출이잖아.
지금의 너희와 함께라면 예전에는 못했던 도전적인 연출도―― 그래, 대사가 하나도 없는 무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레니]
……여전히 터무니없는 짓을.

[유키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같이 보러 갔던 연극에서 대사가 없는 장면에 감동받은 적이 있었지.

[레니]
넌 그 후에 노골적으로 영향을 받았었지. 일일이 핫카쿠 씨가 쓴 각본의 대사를 줄이려고 해서 연습하면서 충돌했고.

[유키오]
아…… 그랬었지.

[레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왠지 너와 의견이 맞지 않게 됐어.

[유키오]
…….
레니, 나, 그때 말이야――.

[레니]
말 안 해도 돼.
사과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유키오]
……그래, 그렇구나.

[레니]
…….

[유키오]
…….

[슈]
수고가 많아.

[유조]
수고.

[카스미]
생각보다 다들 빨리 왔네.

[히로]
다들 한가하구만.

[젠]
남말할 때가 아닐 텐데.

[유키오]
다들 어서 와. 조금 전에 '완숙 컴퍼니'얘기를 하고 있었어.

[히로]
이름 그걸로 결정 난 거야?

[슈]
만개에 대항해서 완숙으로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영 내키지 않는다니까.

[유조]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카스미]
쓸 때는 알파벳을 섞어서 'WANSUK 컴퍼니'가 되는 건가?

[젠]
딱 보고 뭔지 모르겠는걸.

[레니]
……. (……대사량이 많다고 생각되는 장면, 내뱉지 않아도 되는 대사도 있어)
(말하지 않은 대사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 그러니 말할 필요 없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레니]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하루 종일 뭘 하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유키오]
……조금, 대사가 많은가.

[레니]
?

[유키오]
조금 더 적은 편이 레니 연기가 돋보일 것 같아.

[슈]
핫카쿠 씨가 쓴 대사를 줄이겠다고?

[히로]
그런 짓을 어떻게 해……!

[유키오]
얘기해볼게.

[레니]
아니, 이 장면은 그대로 가는 게 좋아. 지금 내 역량으로는 관객에게 다 전달할 수 없어.

[유키오]
그렇지 않아. 레니는 할 수 있어.

[레니]
무슨 근거로――.
(그건, 너라면 가능하겠지. 그날 봤던 너라면……)

[유키오]
한번 시험해보자! 핫카쿠 씨도 연기를 보면 이해해줄 거야.

[레니]
간단하게 말하지 마. 애초에 넌 배우를 지나치게 신용하는 면이 있어. 괜찮다, 할 수 있다 말하지만 그건 네가 그렇게 밀어붙이는 것뿐이야.

[유키오]
그렇지만 너희 연기는 점점 좋아지고 있고――.

[레니]
너무 낙관적이야.

[슈]
정말이지…….

[히로]
또 시작이냐.

[유키오]
응? 해보자!

[레니]
그렇게 고집할 거면 네가――.
(나 대신 무대에 서면 되잖아)

[카스미]
늦었죠~!

[유키오]
잡아끌지 마!

[슈]
이제 젠만 남았네.

[히로]
곧 오겠지.

[젠]
안녕.

[카스미]
안녕하세요!

[레니]
…….

[유키오]
으~음, 일단 휴식할까?

[젠]
카스미랑 유조는 학교 끝나고 바로 온 거지? 샌드위치 만들어 왔어.

[카스미]
와아, 고마워요!

[유조]
배고팠는데. 고마워.

[히로]
너희 먼저 저기 가서 옷 갈아입고 와.

[카스미]
그럴게요.

[레니]
…….

[유키오]
…….

[카스미]
……있잖아, 왠지 요즘 유키오 씨랑 레니 씨…….

[유조]
응? 저 둘이 왜?

[카스미]
모르겠어? ……유조 너 진짜 둔감하다니까.

[유조]
뭐야?

[젠]
너희 몫도 있어.

[유키오]
잘 먹겠습니다.

[히로]
가라아게는 없어?

[젠]
없어. 닭고기는 튀기기보다는 삶고 다리살보다 가슴살로 해라.

[히로]
그러면 가라아게가 아니잖아!

[젠]
그래야 더 건강하고 단백질도 섭취할 수 있어.

[유키오]
젠 씨는 영양도 제대로 신경 써준다니까.

[젠]
배우는 몸이 자본이니까.

[레니]
……후우.

[슈]
자기 연기에 대한 이상이 꽤 높다니까, 넌. ……아니, 높아진 건가?

[레니]
……흥.

[슈]
기억이란 건 자기 좋을 대로 미화되는 법이야. 허상을 추구해봤자 좋을 거 없을 거다.

[레니]
(그렇다 해도, 난……)

[하루토]
"네가 아직 모르나 본데, 그건 기만이야."

[시후토]
"아니야!"

[하루토]
"너 자신에게 물어봐. 정말 진심으로 그 녀석을 축복해줬는지. 네 안에 질투나 원한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어?"

[시후토]
"아니야. 난 그 녀석을 계속 응원해왔어. 비록 우리가 가는 길이 달라졌다 해도――"

[레니]
거기까지.
……조금, 대사가 많군.

[하루토]
네?

[레니]
너희라면 이 장면의 감정은 대사 없이도 표정과 행동으로 전달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대사를 조금 줄이고 표현 방법을 달리해서 보여주는 게 이 장면도 두드러지겠지.

[시후토]
그건 우리 연기가 좋아졌다는 거죠? 앗싸!

[마도카]
그렇구나…… 참고가 됐습니다! 대사를 조금 조정해볼게요!

[레니]
거기에 맞춰서 조명 연출도 다시 생각해야겠지. 감정에 포커스를 맟추는 방향으로 가자.

[하루토]
장면 이미지가 달라져서 훨씬 인상적이에요! 역시 레니 씨……!

[레니]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하지. 이후에 플뢰르상 이사회 모임이 있어.

[시후토]
그럼 자율연습해야겠네요.

[마도카]
저도 조금 더 남아서 각본을 수정해 볼게요!

[레니]
그럼 나머지는 하루토에게 맡기겠다.

[하루토]
네!

-

[레니]
(……대사가 많다, 라)

-

[유키오]
쿨쿨…….

[레니]
……타치바나, 일어나. 벌써 방과 후야.

[유키오]
방과 후!? 레니, 서두르지 않으면 늦겠어!

[레니]
뭐가. 부실로 가는 거 아니야?

[유키오]
오늘 꼭 레니랑 보고 싶은 연극이 있어! 학생은 무료래! 이건 봐야지!

[레니]
그런 건 좀 더 빨리 말해. 그 전에 졸 게 아니라 좀 더――.

[유키오]
빨리, 빨리!

[레니]
하아…….

-

[배우A]
"미안해."

[배우B]
"……."

[배우A]
"……."

[레니]
……. (귀가 아플 정도의 정적…… 이 정도면 부자연스러워야 하는데, 배우의 연기에 끌려 들어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니 몰랐어. 타치바나는 어떻게 생각할――)

[유키오]
…….

[레니]
(집중하고 있군. 이런 일에 신경을 쓰는 건 나뿐인가)

-

[유키오]
어땠어?

[레니]
서두부터 훌륭했어. 연출도 놀라웠고 주연은 물론이고 다른 배우들도 인상적이었어.

[유키오]
클라이맥스쯤에 연출도 좋았지! 난 그런 생각은 못 할 거야.

[레니]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정적 연기도 놀라웠어.

[유키오]
응응! 나도!

[레니]
……대사가 없어도 전해질 수 있구나.

[유키오]
객석에 맡긴 것 같았어. 해석의 가능성을.

[레니]
그렇지.

[유키오]
그 장면, 레니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어. 나중에 물어보려고 했어.

[레니]
(……타치바나도 같은 생각을 했던 건가)
언젠가 우리도 저런 연극을 만들고 싶어.

[유키오]
레니도 할 수 있을 거야. 저런 연기를. 내가 레니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꽃피워줄 거니까!

[레니]
……하여간 대단한 사람 나셨어.

-

[레니]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지. 눈앞의 남자가 무대에 오르면 어떤 연기를 하는지――)
(――그 문화제 날까지, 알 방법도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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