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다녀왔어.
[가이]
어서 와. 겨울조 소이네야 효과는 있었던 것 같군.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아즈마]
덕분에. 귀찮게 해서 미안해.
[가이]
아니, 다들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아즈마]
그러고 보니 가이는 어때? 가게 이름은 정했어?
[가이]
아…… 후보를 몇 가지 추리기는 했는데 와 닿는 게 없어서.
[아즈마]
사자성어 사전에 포스트잇이 가득하네.
나도 가이랑 비슷한 느낌이야. 다들 신경 써준 덕분에 악몽도 안 꾸고 기분도 가라앉지 않았어. 토지 건도 조건 좋은 양도처가 생길 것 같아서 고민할 건 아무것도 없는데, 속이 개운하지가 않아.
후훗, 우리 둘 다 나름대로 나이를 먹었는데 마치 길을 잃은 것 같네.
[가이]
그렇군.
[아즈마]
주연과 준주연이 이래서는 안 되겠지. 좀 더 정신 차리고 있어야지.
[가이]
그러고 보니 오늘 소이네야 당번은 나였지. 곁에서 함께 잔 건 어릴 적 시트로니아 정도인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아즈마]
어젯밤에도 결국 연극 바보의 대본 리딩에 어울려줬을 뿐이었는걸. 오늘 밤엔 자기 전에 맛있는 칵테일을 마시고 싶은데.
[가이]
그렇다면 마침 잘됐군. 가게에서 새로운 칵테일을 시음해주길 바란다.
[아즈마]
바텐더 소이네야인가. 신선해.
[가이]
소이네야도 이름을 정하는 게 좋을까?
[아즈마]
호마레는 호화로운 이름을 붙였었어.
[가이]
그렇군. 유키시로의 소이네야는 어떤 이름이었지? 어떤 이유로 붙였는지 새삼스럽지만 듣고 싶다.
[아즈마]
이름이라…… 이름이라고 할만한 건 없었어. 어제 츠무기랑 타스쿠에게도 얘기했지만, 나는 나 자신의 고독에서 구원받기 위해 소이네야를 했어.
그러니 지금 그 사자성어 사전을 써서 이름을 붙인다면…… '일일천추(一日千秋)'일까?
[가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인가.
[아즈마]
뭐, 그런 느낌이야.
[가이]
……나는 가게를 통해 손님께 무언가를 전하는 것만을 생각했었다. 내가 가게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시점은 없었지.
[아즈마]
후후, 조금은 힌트가 됐을까?
-
[이즈미]
이번 공연 포스터가 나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점원]
여기에 둘게요. 힘내세요.
[이즈미]
감사합니다!
(응, 이번 포스터도 정말 잘 만들었어. 여전히 카즈나리 군의 디자인은 보기 좋고 눈에 띄어)
(연습도 대체로 순조롭고…… 겨울조가 애써준 덕분에 아즈마 씨의 라스트 신 연기도 꽤 좋아졌어. 하지만 아즈마 씨와 가이 씨가 대사를 주고받는 부분은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연습은 지금 단계로 만족하고 이제 공연을 하며 발전하는 걸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뭔가 계기만 있으면……)
[슈]
천의 얼굴이구만.
[이즈미]
어라, 슈 씨. 뭐 사러 온 거예요?
[슈]
이번 공연 포스터를 전해주러 왔지.
[이즈미]
슈 씨가 주고 다니는 거예요? 수고스럽게.
[슈]
여기는 예전부터 내 단골이었으니까. 이후에 마시러 가려고 했으니 겸사겸사 온 거지.
[이즈미]
앗, 그럼 같이 공연 성공을 기원하며 한잔할래요?
[슈]
하아…… 어차피 네 아빠 얘기를 듣고 싶은 거겠지. 한 잔 만이야.
[이즈미]
네!
-
[가이]
(오늘은 손님도 적고 일찍 마감할 수 있을 것 같군. 가게 이름이라도 생각할까……)
[이즈미]
가이 씨, 안녕하세요.
[슈]
실례하지.
[가이]
어서 오세요.
[슈]
……그 메모는 뭐지?
[이즈미]
아, 혹시 가게 이름 생각 중이었어요?
[슈]
지금 생각하는 건가. 게다가 그 한자의 나열은 가게 분위기가 아깝군.
[가이]
시트로니아가 참고용으로 사자성어 사전을 빌려줬다. 거기서 여러 가지 픽업해봤다.
[슈]
사자성어는 바 이름으로는 좀 고리타분하지 않나?
[아즈마]
어라, 귀한 손님이 왔네.
[슈]
역시 신생조가 출입하는 가게야. 여기 있으면 누구든 보게 된다는 건가.
[이즈미]
(왠지 어른스러운 멤버가 모였네…… 나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아즈마]
그러고 보니 지금 땅을 잘 활용해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슈 씨는 관심 없어?
[슈]
땅?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야.
[아즈마]
지방인데, 순회공연을 많이 가는 슈 씨라면 유용하게 활용할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돈도 남아돌 것 같고.
[이즈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업하다니…… 역시 아즈마 씨야……)
[슈]
관심은 없지만, 술안주로 얘기는 들어주지.
[아즈마]
원래 우리 본가가 있던 땅인데, 상속받았지만 딱히 쓸데가 없어서. 주차장으로 쓰는 것도 내키지 않고…….
[슈]
부모가 남겨준 거잖아. 그렇게 간단하게 팔아버려도 되겠어?
[아즈마]
간단하게는 아니었는데…… 박정한가.
[슈]
글쎄다. 뭐, 부모가 남겨줬다고는 해도 그걸 어떻게 할지는 살아있는 자기가 직접 정하는 거지.
나도 한 번은 집을 나와서 연극과는 연이 없는 생활을 했어. 하지만 MANKAI 컴퍼니에 들어가고, 퇴단하고…… 결국은 가업을 이었지.
[아즈마]
그건 왜?
[슈]
……아직 거기에 있었으니까.
[이즈미]
거기에 있어요?
[슈]
이미 나온 극단에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있을 곳은 이제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동생이 울며 매달린 탓에 돌아갔을 때 이어받을 만한 이유를 발견해버렸어.
[아즈마]
그건――.
[슈]
한 잔만 하기로 약속했었지. 잘 마셨어.
[아즈마]
…….
[슈]
'인생행로(人生行路)'.
[아즈마]
응?
[슈]
인생은 한 가닥 행로다. 아무것도 없다며 지나친 길도 되돌아보면 무언가 남아있는 법이다.
공터라고 생각하는 그곳에도 의외로 무언가 남아있을지도 몰라.
[아즈마]
――.
[가이]
――.
[슈]
그럼 간다.
[가이]
……감사합니다. 또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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